내가 만나기만 하면 정말 열띤 토론을 벌이게 되는 사람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직장에 다니는 아는 언니이고, 한 명은 타 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동갑내기 친구이다. 이상하게 이 두 명만 만나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도 꼭 정치, 경제, 철학 등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가 귀결 되고 싸움이 날 정도로 토론을 하게 되었다. 처음 우리가 토론을 하기 시작했을 땐 서로 생각이 매우 달랐다. 나는 거의 ‘불평등한 이 세상은 망했어!’를 신조로 정부와 기업들, 특히 대기업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는 불평등과 사기가 난무하고, 서민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손을 쓰지 않고 기업은 사회에 책임을 다 하지 않는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었다.

     그런데 그 두 명은 나와 완전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직장 다니는 언니는 나와 이야기할 때마다 기업의 입장에서 기업가들을 변호했다. 언니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다니는 게 아니라 소수 정예의 벤처 기업에 다녔고 항상 회사를 어떻게 키워야 할 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완전 사장님의 마인드로 기업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본질이라는 것을 근거로 하여 나의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그러면서 항상 대화의 마지막에는아 내가 대학생이랑 있으니까 돈 남기는 데 도움도 안되는 이런 이상적인 대화를 하게 된다고 장난스럽게 말하며 기업가의 면모를 보여주곤 했다. 한편, 내 동갑내기 정치외교학과 친구는 인간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완전 지지했다. 나는 자유주의, 자본주의같은 ‘~주의의 이념적 차이점을 자세히 알진 않았지만, 일단 시장은 완전 실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장이 제기능을 못하는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 무슨 자유, 자본주의냐라고 생각하여 친구와 대척점에 서서 소리 높여 싸우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렇게 나름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을(사실 사상이랄 것도 없을 정도로 학문적 기반은 없었지만) 가진 사람이었지만 2학년 2학기 때 경제학을 처음 접하고 배우면서 생각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경제학은 정말 신기한 학문이다. 개인과 기업을 하나의 경제 주체로 생각하고 그들의 이타주의를 바탕으로가 아니라 이기주의를 전제로 하여 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한다. 개인과 기업 각각 자신의 이득과 이윤을 목표로 하는데 사회적 효율이 달성된다. 또한 이런 상호과정을 사회 전체로 보고 분석한 다음 정부의 올바른 역할을 알아볼 수 있다.  경제학을 공부한 지 1년 반 된 내가 정리한 경제학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이걸 그냥 들으면 '이게 뭐?' 하겠지만 이성적 논거 없이 마냥 세상에 분노하던 나에게 경제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미시경제학에서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직장 언니의 주장이 무슨 느낌인지 이해할 수 있었고, 경제학자들이 인간의 이기주의를 토대로 만든 냉정해 보이는 경제학 이론들을 알아가면서 동갑내기 정외과 친구의 의견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불평등'은 이렇게 나에게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는 개념이었고 불평등을 해결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내가 경제학을 공부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평등에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많이 사그러 들었고 세상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곳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평등은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기업가들은 버는 만큼 경제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있으니 사회에 너무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말라던 언니와 친구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다수의 사람들은 노력하는 것에 비해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반면, 소수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기여하는 것에 비해 너무 많은 보상을 받고 있었다. 또한 분명히 현실에서 경제학 교과서에서 시장을 소개하는 모습과 거리가 먼 약탈적이고 독점적인 행태를 항상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의견은 추상적인 느낌으로만 존재하여 상대방에게 논리적으로 불평등에 대한 나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스티글리츠 교수의 <불평등의 대가>는 이런 나에게 사실적인 논거들을 제시해 주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현재 미국의 불평등의 수준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불평등을 초래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요인들의 역학 관계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경제 주체들의 행태와 노동, 금융, 상품 시장의 시스템, 정부 정책, 정치 시스템, 사회적 규범, 통념, 교육, 법률 등 모든 것들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얽히어 불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 제일 큰 문제는 정부가 이 메커니즘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계와 기업 같은 정부를 제외한 다른 경제 주체들은 주어진 구조 하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그로 인해 효율이 달성될 수도 있고, 지금처럼 지독한 불평등의 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때 정부의 역할이 결정되는 것이다. 다른 경제 주체들이 자신을 위해 경제활동을 함으로 인해 효율과 형평이 달성 된다면 정부는 손을 떼고 그들의 활동에 개입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경제, 정치, 사회를 원상복구 시켜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티글리츠는 이렇게 불평등이 심각한 현실에서 정부가 두 가지 방향으로 불평등에 일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 정부는 세전소득 분배의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있으며, 둘째, 누진세 및 복지정책을 통해 불평등을 바로잡는 역할을 축소하고 있다. 저자는 현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부 정책의 중요성을 끝까지 강조한다. 마지막 장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에서도 불평등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써 내놓은 것들은 모두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직장 언니와 친구가 말했듯이 기업이나 개인에게 경제활동을 할 때 스스로 이타심을 지키고 사회적 후생을 생각하라는 것은 너무 순수하고 비현실적인 발상이었다. 그나마 구조, 제도, 법률이 그들이 사회적 후생을 지키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 구조, 제도, 법률을 만드는 것은 정치시스템이다. 또한 정부에게는 시민들이 부여한 중요한 권리가 있다. 세금을 걷어 가서 그것을 개인 경제주체들이 하지 못하는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돈을 쓰는 것이다. 정부가 이 활동을 신중하게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이다. 개인 경제주체들은 어리석다. 당장 눈 앞에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불평등이 생겨났고 점점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어리석으면 안 된다. 정부는 다른 사람들처럼 눈 앞의 자신의 이익을 좇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으로 인해 파생될 추가적인 문제들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정부의 역할 외에 공감했던 저자의 생각 두 가지를 제시하면서 독후감을 끝내려고 한다. 첫 번째로, 불평등은 시장 경제의 작동을 위해 용인해야 할 필요악이 아니라 갖은 노력을 통해 예방하고 시정해야 할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저학년때 나는 시장은 실패했다는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담 스미스 등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시장의 개념을 이해하고, 경제학을 공부할수록 시장은 좋은 것이구나 라는 막연한 느낌이 생겼다. 경쟁과 시장이 자유롭게,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이득을 가져다 준다. 한계 생산성 이론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고 기여한 만큼 보상 받을 수 있고, 경쟁에 따라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소비자들은 최선의 물건을 최선의 가격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결국,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계속 노력해야만 시장 경제의 장점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두번째로,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과 불평등의 수준이 지금보다 나아지면 우리 사회의 소득이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 다르다는 것이다. 불평등은 있을 수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불평등이 없어지면 유인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불평등이 현재보다 나아진다면 오히려 유인은 증가한다. 결국 정부는 시장과 경제의 작동을 개입하고 방해하는 압제자가 아니라, 불평등을 해소함으로써 시장의 작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도우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렵기도 하고 재미없는 부분도 있어서 그런 부분은 뛰어넘고 읽기도 했는데 세계적인 경제학자의 생각을 조금 엿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내가 논리적으로 주장할 수 없던 부분을 잘 풀어서 설명해 줘서 시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두 분과 토론할 거리가 하나 더 생겨서 기쁘다. 이 책이 내 입장을 더 설명해준 것이어서 나중에 토론할 때 잘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지루해질 때마다 다른 고전소설책을 꺼내서 읽었는데 이 책도 읽고 소설책도 다 읽는 1타2피의 쾌거를 이루었다. 방학 동안 다양한 책을 읽어보는 게 스스로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는데 이렇게 다 읽고 독후감도 남길 수 있어서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