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합니다.

시험기간이 되면 어김없이 꽃이 피고 시험이 끝나면 꽃축제도 함께 끝납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시험기간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애증의 관계랄까요..

목표가 선명해져 집중하기가 평소보다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즉 일체 잡다한 일에서 시험공부로 시간을 배분하게 됩니다.
선택은 제약조건 하에서 최적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어떤과목을 얼만큼 공부할지 대충 감을 잡은 후 시간을 배분하게 됩니다.
저는 시험기간 plan을 세울 때면 저도 모르게 제가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가정합니다.
합리성을 가정하고 세운 plan이 현실적합성을 가지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교수님께서 사계에 쓰신 계획의 달인을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꽃잎과 함께 시험기간의 굳은 결심도 흔들립니다.
지킬 것이라 굳게 믿었던 plan들은 경제학의 가정이 깨지듯 하나하나 깨지게 됩니다.

또한 현실세계에선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하고 맞은 봄의 꽃들은 저에게 시험 결과의 cost보다도 엄청나게 큰 benefit을 줄 것 같았습니다.

수업시간에는 benefit이 불확실할 때는 최소비용의 원칙을 사용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벚꽃을 보러가기로 선택하였습니다.

확실한 효용보다 기대효용이 컷다고나 할까요. 미팅을 하고 썸을 타던 남학생이 같이 벚꽃을 보러 가자고 했거든요.
결국 저는 함께 벚꽃을 보러갔고 잘되서 만나게 되었'었'습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아시리라 믿어요 지금은 꽃과 함께 추억속으로 사라졌음)

그리고 그 다음해 봄에도 어김없이 중간고사와 꽃들이 함께 인사했습니다.

이 때는 다른 남자친구와 이미 사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미 잡은 물고기여서 인지 아니면 일년 학교를 다니며 본 쓴맛 때문인지(하나의 결과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죠) 기대효용보다 확실한 효용이 커졌습니다. 즉, 위험기피적이 된 저는 시험공부를 택하고 꽃놀이를 포기하였습니다.

작년 봄에는 불순한(?) 이유 없이 친한 친구와 벚꽃만 보러 잠시 여의도에 다녀왔습니다.
봄에는 아무래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성세포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여의도 벚꽃축제가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시나 시험기간입니다. 다행히(?) 날이 흐립니다.

 

 

*용기내어 첫 번째 글의 타자가 되었습니다. 혹시 경제 이론 사용한 것에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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