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독후감; 160110 by 떠돌이

 

필자는 3학년 때(2014년) 재정학을 수강했다. 수업 첫 날, 교수님께서 읽을 책(reading)들을 소개해주셨다. 수업 후, 수업교재를 장만하러 서점에 갔다. 필요한 책들을 다 사고 나니 재정학 시간에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책들이 생각이났다. 서점에 온 김에 한 권 장만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때 책<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을 구입했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껴안으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책장에 책을 꽂아 두니 아주 근사해보였다. 다음 날, 책을 펴 '감수의 글'부터 읽어나갔다. ch1도 채 못 읽었는데,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날이 갈수록,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지 않아야 할 변명거리가 늘어갔다. 결국, 책은 주인에게 버림받은 채 책장에 꽂히게 되었다.

 

지난 2학기에 다세를 수강하고 교수님께 연락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약 2주동안 읽어볼 책들을 소개해주셨다. 그 책들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정치질서의 기원>, <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 1-5장 였다. 책장에 꽂힌 책<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을 꺼냈다. 4일 동안 가용한 시간을 모두 쏟아부은 결과, 책을 다 읽었다. 이 글을 통해 책<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내용과 느낀점, 필자가 얻은 것, 그리고 향후 독후감 계획을 소개하고자 한다.

 

(책의 내용)

먼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은 한 국가의 빈부에 대해 파헤치는 저자의 이론을 제시한다. 번영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빈곤을 겪는 국가가 존재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이에 대한 저자의 해답은 '제도'에 있다. 제도는 크게 두 가지, 즉 경제제도와 정치제도로 나뉠 수 있다. 각 제도 또한 두 가지, 즉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로 나뉠 수 있다.

 

 

포용적 정치제도란 충분히 중앙집권화되고 다원적인 정치제도를 뜻한다. 두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한다면 착취적 정치제도다. 포용적 정치제도를 위해 두 조건이 필요한 까닭이 무엇인가. 첫째, 정부가 중앙집권화 되어야 공공서비스 제공, 경제활동 규제, 법질서 강제, 시민의 기본적 안전 보장 등이 가능하다. 중앙집권화에 실패하면 그 사회는 소말리아처럼 곧 혼란에 빠지고 만다. 둘째, 다원적인 정치제도란 사회 전반에 권력을 고루 분배하고 견제하는 정치제도다. 광범위한 연합이나 복수의 집단이 정치권력을 고루 나눠 가져야 소수가 권력을 독점할 수 없다. 따라서, 두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 사회에 포용적 정치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다.

 

포용적 정치제도는 포용적 경제제도로, 착취적 정치제도는 착취적 경제제도로 이어진다. 포용적 경제제도 하에서는 국민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해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며 개개인이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사유재산을 확고히 보장하고,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공평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포용적 경제제도는 정부에 의존한다. 질서를 집행하고 절도와 사기를 방지하며 당사자 간 계약 의무 이행을 명령할 수 있는 강압적인 역량을 가진 것이 바로 정부라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착취적 경제제도는 포용적 경제제도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속성을 갖는 제도다. 착취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한 계층의 소득과 부를 착취해 다른 계층의 배를 불리기 위해 고안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포용적 정치제도는 포용적 경제제도와 선순환 한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포용적 정치제도가 꽃필 수 있는 자양분이 되며, 포용적 정치제도는 포용적 경제제도에서 일탈하려는 움직임을 억제한다. 선순환이 강화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광범위한 연합세력의 권한강화이다. 반면, 착취적 정치제도는 착취적 경제제도와 악순환 한다. 착취적 정치제도는 착취적 경제제도로 이어져 다수를 희생시키면서 소수의 배만 불려준다. 소수가 경제적 부와 권력으로 정치권력을 살 수 있으므로 착취적 경제제도는 착취적 정치제도를 뒷받침한다.

 

포용적 정치제도와 포용적 경제제도는 서로 선순환해 경제성장과 번영의 밑거름이 된다. 반면, 착취적 정치제도와 착취적 경제제도는 서로 악순환해 한 나라에 정체와 빈곤을 가져온다. 이것이 저자 이론의 주된 골자다.

 

그럼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오늘 날 세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착취적 제도를 갖고있는 나라에 포용적 제도를 이식하면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문제 해결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제도라는 것이 끈질긴 생명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면 착취적 제도를 갖고있는 나라가 포용적 제도를 갖는 것은 영영 불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지도 않다. 현재 포용적 제도를 가진 영국, 미국 등의 나라 역시 과거엔 착취적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 착취적 제도의 악순환을 끊고 포용적 제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을까.

 

여러 사회에는 사소해 보이는 작은 제도적 차이들이 쌓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작은 차이들이 쌓이다 보면 제도적 부동 과정이 시작된다. 제도적 부동이란, 다른 모든 면이 유사한 사회라 하더라도 제도적인 면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는 현상이다. 제도적 부동으로 초래된 차이는 사회가 결정적 분기점에 직면했을 때,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결과적으로, 결정적 분기점과 제도적 부동의 상호작용에 따라 전 세계의 경제 발전은 대단히 다른 패턴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필연이 아니라 우발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미국과 영국같이 포용적 제도가 뿌리내린 사회는 얼마간의 행운이 뒤따랐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은 지속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내부 분쟁과 불안정이 끊임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자 이론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 및 경제 제도의 상호작용이다. 이 이론은 제도가 어떻게 변하며 그런 변화의 결과는 어떤지 고민해볼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제도의 작은 차이와 역사적 우발성이 이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예측력이 제한적이다.

 

(느낀점)

필자는 이 책을 읽고 크게 네 가지를 느끼게 되었다. 첫째, 정부는 존재해야 된다. 정부의 존재가 워낙 당연한 시대를 살아왔기에, 정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정부를 세우는 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간과했다. 필자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여러 공공서비스들은 중앙집권화된 정부가 없으면 제공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 정부의 질(quality)을 따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둘째, 세계 불평등 연구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역사 분야도 함께 연구해야 한다. 세계 불평등은 일견 경제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사회가 왜 그토록 비효율적으로 짜여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 역사 분야에 대한 연구 역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를 연구한다는 것은 의사결정의 how(실제로 의사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는지), who(누가 그런 의사결정을 하는지), why(왜 그런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제도의 기원을 살피는 것이다.

 

저자는 구체적 사례를 제시해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덕분에,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국의 명예혁명, 중국의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에 대해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서술이 되어있기에 역사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역사적 사실 2가지를 소개하겠다. 하나, 나폴레옹(1769-1821)이 베토벤(1770-1827)과 동시대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영웅 교향곡] 작곡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폴레옹의 이름이 적힌 악보의 표지를 찢었다고 한다. 둘, 톈안먼 사건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1976년, 1989년에 있던 사건이다.

 

필자는 명예혁명 등 책에 자주 등장하고, 익숙하지 않은 서양사는 따로 정리해두었다. 이는 두 번째 책<정치질서의 기원>을 읽을 때 도움이 되었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들이 반복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화되고 다원화된 현재의 사회는 정말 최근에야 만들어졌다. 포용적 제도가 정착 된 것은 20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인류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짧은 기간이다. 이 책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얼마나 착취적인 제도하에서 살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미국 대학교에 최초의 흑인(James Meredith)이 입학한 해는 1962년이다. 그 당시 James Meredith는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부모님 세대가 그 즈음에 태어나셨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미국에는 흑인차별이 여전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넷째, 기존 세계 불평등 이론의 논리적 결함을 짚어내는 저자의 분석능력이 탁월해보였다. 현재, 세계 불평등을 설명하는 기존 이론으로는 지리적 위치 가설, 문화적 요인 가설 등이 있다. 지리적 위치 가설이란 세계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으로, 극심한 빈부격차가 지리적 위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가설이다. 문화적 요인 가설이란 번영이 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각 가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먼저 지리적 위치 가설에 맞지 않는 사례를 제시한다. 현재, 남한과 북한을 경제적 측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국가로 갈라 놓은 것은 기후, 지리적 위치도 아닌 국경이다. 38선 이남에는 포용적 제도가, 이북에는 착취적 제도가 들어선 까닭이다. 그 다음으로, 문화적 요인 가설을 반박한다. 남북한 간에 목격되는 문화적 차이는 번영의 차이를 초래하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주장한다.

 

(필자가 얻은 것)

위의 서술한 네 가지가 필자가 느낀점이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얻은 것을 서술하고, 향후 독후감 계획을 짧게 언급함으로써 독후감을 마치고자 한다. 필자의 얻은 것을 서술하기 전에, 필자가 어떻게 대학생활을 보냈는지 소개할 필요가 있다.

 

1학년 시절, 필자는 전공책을 읽지 않아도 성적을 받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PT로 공부하면 그만이었다. 또한, 그 때까지만 해도 벼락치기가 통했다. 필자의 벼락치기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2학년 시절, 별반 다름이 없다. 경제학에서 중요한 기초 과목인 미시와 거시도 수업 후 모두 까먹어주셨다.

 

3학년 시절, 대학생활의 반절을 보냈음에도 불구 더 다양한 경험에 목이 말랐다. 바쁨이 미덕인 줄 알았다. 자연히, 학교 밖으로 구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절대적인 공부시간이 확보되지 않았다. 하지만, 3학년 과목은 벼락치기로 공부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1,2학년 때 배웠던 내용들이 기초가 되어있어야 했고, 공부시간도 더 많이 확보해야 했다. 결국, 중요한 과목인 재정학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이후, 새로운 목표와 높은 기준이 생겼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꾸준히 공부하기, 실력 쌓는 삶을 살기이다. 사람은 바뀌기 힘들다. 변화를 꿈꾸었지만 생각만 하는 자에게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아예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2015년에는, 나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분기점 3개가 생겼다. 하나, 교수님과의 면담. 둘, 중국 단기어학연수. 셋, 실력을 중시하는 멘토와의 만남이 그 분기점이었다. 먼저, 교수님과의 면담을 통해 실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꾸준히 성장하고 실력을 쌓는 삶을 살아나가고 싶었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선 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 필자는 중국에서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 규칙적인 생활이다. 필자는 12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났다. 드디어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첫 성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업에 가기 전에는 전날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꾸준함이 쌓이자 실력은 금방 늘었다. 둘, 필자가 대학교에 지불하는 비용보다 편익이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국에서 해외 명문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몇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토론, 에세이로 시험을 본다고 했다. 객관식, 단답형으로 얻어낸 내 학점이 아무리 높다 한들 의미없게 느껴졌다. 또한, 해외 대학교는 방학이 한국보다 짧았다. 학기 기간과 공부 정도에 양적 상관관계가 있다고 단정짓진 못하겠지만, 학기 기간이 길다는 것은 공부할 환경이 그만큼 마련된다는 뜻이었다. 저런 환경에서 진짜 실력을 쌓으며 4년을 보낸 친구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와 실력을 중시하는 멘토를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을 통해 내가 그간 대학생활을 잘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은 나에게 벼락치기의 편익보다 비용을 높여주었고, 그 결과 지난 2학기에는 꾸준히 공부하게 되었다.

 

필자는 24살이다. 남들이 보면 진로준비를 한창 하기에 바쁠시기지만, 거의 마지막 방학이나 다름 없는 이번에는 책 한권 제대로 읽고 싶었다. 책을 읽어 지식을 얻는 것도 중요했지만, 필자는 두꺼운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경험 자체가 대학시절 내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았다.

 

필자는 이번 독서를 통해 다음을 얻었다. 가용한 시간을 최대(full)로 투입하면 4일 만에 700쪽 책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긴 시간이었다. 남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지 몰라도, 중국에서 얻은 성공경험에 이은 또 하나의 작은 성공경험이다. 물론, 단순히 책을 읽은 것과, 그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사실, 독후감을 작성하기 전에, 어떻게 써야되는지 고민이 되었다. 최대한 전문적인 서평처럼 써볼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쓰지 않아도 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전문적으로 쓴다 한들, 내 글보다 질(quality)이 높은 글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차라리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는게 나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솔직해졌다.

 

(향후 독후감 계획)

필자는 다음 책으로는 fukuyama의 책<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 13장(good government, bad government)을 읽을 계획이다. 처음에 이 책의 1-5장을 읽을 때는 내용 이해에 급급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두 번째 읽기이니, 기준을 좀 더 높여야겠다. 목표는 두 가지 이다. 하나, 챕터 도입부에 저자가 써놓은 질문에 답하기이다. 둘, 독후감 작성하기이다.

 

다음 독후감으로 여러분을 다시 찾아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