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늘 내가 선생님이 되길 원하셨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할아버지를 뵐 때마다, 사대에 가라는 말씀을 들었던 것 같다. 문제는 난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이유는 몹시 간단했는데,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싫었다는 말은 아니다. 난 그냥 학교에 별 감정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을 때도 많았지만 그건 친구가 좋았고 우리가 좋았던 거지, 학교라는 시스템 자체와는 관련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중•고등학교가 조금 더 행복해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처럼 단지 수단으로서 그 과정을 거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행복한 중•고등학교를 만들어 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유를 말해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내가 사대를 가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셨고, 지금도 가끔은 아쉬워하신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들었던 가장 큰 생각은, 어른들이 내게 하시는 기대가 정말 전형적이면서도 특정하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내가 나를 보았을 때, 내가 전형이라고 불리는 것들에서 많이 벗어난 길을 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특정한 기대라는 건, 굉장히 충격적인 제약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7년째 내가 집에서 혼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일명 예측 불가능해지기프로젝트인데,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내가 어른들의 특정한 기대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내 밑의 동생들이 조금 더 자유로운 기대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 집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명절마다 내게는 현실성이 있으면서, 어른들은 미처 생각하지 않고 계셨을 부분에 대한 '폭탄' 발언을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넌지시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의 결과로는 가장 효과가 좋은 주제는 결혼이었는데, 외국인부터 비혼까지 그 경우가 끝도 없이 다양해질 수 있으면서, 그에 대한 기대 또한 몹시 특정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게 정말 신기하게 다가왔던 건, 시간에 시간을 더하면서, 어른들이 내게 하시는 말씀 속에서 아주 작은 변화라도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 가능성을 느끼면서, 나는 여전히 명절마다 내 생각을 가장해 삶에 대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은밀하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던 이유는, 나에 대한 전형적이고 특수한 기대 때문이었지만, 사실상 그건 우리집의 세계가 나를 구성하는 방법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나와 같은 개인이 세계의 일부분으로 존재하기에, 기존의 세계가 개인을 정의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개인 차원의 제도와 사회 차원의 구조에 연결해 이야기하면, 구조 속에서 제도가 만들어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구조란 이전 글(<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대런 애쓰모글루> 독후감)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제도에 관습적•문화적 의문을 합친 것을 의미한다. , 사람들이 기존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특정한 방식의 삶이 존재하고, 그것을 개인에게 권장한다는 것이다. <나와 세계>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도 여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책에서 좋은 제도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는 지리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농업의 역사와 적잖은 관계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농업이 처음 등장해 그 자체로 문화이며 구조일 때, 농업의 과정에서 잉여 생산물이 생겼고, 그로 인해 중앙정부와 시장 같은 복잡한 제도가 발달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납득할 만한 말이다. 잉여 생산물로 인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었고, 그 잉여 생산물을 거래하기 위해 시장 시스템이 발달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가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중요한 지점이 한가지 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논리대로, 농업으로 인해 제도가 발달할 수 있었지만,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하면 제도가 발달하면서 농업 역시 다시 발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장이라는 제도가 발달하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유통망을 제공했고, 안정적인 인센티브가 생겼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조금 더 보장된 바탕에서 농업 기술의 발전을 위한 연구를 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농업은 다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니 사실상 농업이라는 구조와 시장, 중앙정부와 같은 제도는 서로가 서로를 재생산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다시 나와 세계에 대입하면, 세계가 나를 구성하는 것처럼, 나 또한 세계의 일부분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세계가 개인을 정의하는 것처럼, 개인 또한 자신의 세계를 바탕으로 이 세계를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바로 내가 집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는 부분이다. 내가 이 세계 전체를 갑자기 바꿀 수는 없지만, 나의 세계는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세계가 변하면, 우리집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영향에 영향을 더하다 보면, 결국 나와 세계 또한 서로를 재생산 시키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게 된다.

이 재생산 고리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인 예시를 들자면, ‘김영란법이라는 제도와 부패의 문화라는 구조의 관계를 들 수 있다. 김영란법과 같은 부패의 방지를 위한 명확한 제도가 없었기에 부패의 문화가 발전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 부패의 문화가 만연했기에 그에 대한 명확한 제도가 만들어지기 힘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결국 부패의 문화와 그에 대한 제도의 부재는 서로가 서로를 유지시키는 순환 관계 속에 있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책에서 근인과 궁극인을 이야기하며, 좋은 제도의 궁극인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문제에 대해 진짜 원인을 찾는 것은 중요하지만, 내 생각에는 근인의 궁극인을 찾는 방식으로 궁극에 다가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근인과 궁극인의 경계가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을 것 같다. 그 말은 즉, 사실상 근인과 궁극인은 서로를 재생산 시키고 있으니, 어느 정도 궁극인에 다가갔다면, 더 정확한 궁극인을 찾으려 하기 보다는 그 재생산 고리를 끊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영란법이 시행되어도 부패의 문화가 계속된다면, 그 제도는 실질적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제도조차도 없다면 부패의 문화는 영영 사라질 기회마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김영란법의 시행은 부패의 문화에 대한 제도적 근절의 근거를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그 명목상의 궁극인이 문화나 관습과 같은 구조적 부분이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제도의 존재 유무나 그 형태가 그와 밀접한 재생산의 관계를 가지기에, 제도를 바꾸어 나가는 것은 변화의 좋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명절마다 다양한 삶의 경우를 언급하며, 특정한 기대에 대한 문화를 바꾸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도 아직 잘 모르는 나의 삶과, 내 동생들의 삶이 조금 더 개인의 선택에 기반을 뒀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그것이 어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좋은 그리고 때로는 위대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내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 선택을 할 때, 그것을 잘 알고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선택을 더 잘 알기 위해 어른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실제로 내가 언급하는 삶의 경우들은 많은 경우 내 실제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문제는 그 생각들이 가끔은 어른들을, 특히 우리 할아버지를, 당황하게 한다는 것인데 그건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할아버지가 쟤가 저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시는 범위가 조금씩이라도 넓어진다면 내 프로젝트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도와 구조가 밀접한 관련을 가지기에, 제도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 구조적 변화에 대한 좋은 시작인 것처럼, 할아버지가 아시는 세계가 나를 구성하기 전에, 내가 그 세계를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것도 좋은 타협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의 이 물밑작업이 우리 집의 세계를 바꾸고 있다는 건 아직은 나 밖에 모르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변화가 느껴지기에 나는 충분히 즐겁다. 그렇기 때문에 내 프로젝트는 이번 추석에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