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길 없는 길 2"

 

귀는 소리를 먹이로 하여 채집을 하고 있으며, 입은 맛을 먹이로 하여 잡아들이고 있다.

코는 향기를 채집하고 있으며, 눈은 빛깔을 먹이로 하여 형상을 채집하고 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마음은 나무 위를 오르내리는 원숭이 떼처럼 분주하여 쉴 새 없이 생각의 티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은 시비를 낳고, 생각은 분별을 낳으며, 생각은 나와 너를 구분하며, 생각은 관념을 낳는다.

생각은 욕망을 낳고, 생각은 망상을 초래하며, 생각은 편견을 낳고, 생각은 선입견을 초래한다.

생각은 아집을 낳고, 생각은 분노와 공포를 낳는다.

그리하여 생각이 때로는 천국이 되며, 때로는 지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음의 거울 위에는 때가 끼고 먼지가 묻지 않을 것이다.

무수히 날아다니는 생각의 잠자리 떼를 물리치기 위해 손으로 뿌리쳐 끊으려 하고,

칼을 들어 일일이 베려 한다면 그는 보다 큰 생각의 잠자리 떼와 맞부딪혀 마침내 비참하게 쓰러지게 될 것이다.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칼을 들어 어둠을 상대로 베고 찌르면서 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다.

그저 가만히  불을 켜들면 그만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 잠자리 떼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외계를 향한

여섯가지 감각 기관의 문을 가만히 닫아버리는 일일 것이다.

 

그리하면 소리는 울리나 이를 듣는 마음이 없으므로 빈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향기는 있으나 이를 맡으려 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잠자리의 빈 날갯짓에 불과할 것이다.

형상은 있으나 이를 보는 눈이 끓어졌으므로 사물은 다만 색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정에도 들지 않고, 잠에도 들지 않으면서 바로 눈앞을 지나가는 수레를 보지 못한 이구수 나무 아래의 부처처럼

초월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부처가 가섭에게 마음을 전하여 준 것은 그의 이름을 한번 부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섭아'

이 때 부처가 부른 가섭의 이름은 가섭이 가진 전인격이며, 가섭이 지닌 전우주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름을 불렀을 때 그 부름에 응답하여 '네'하고 대답하는 바로 그 존재는 누구인가.

육신인가, 얼굴인가, 마음인가.

누가 가섭인가. 누가 그 주인공인가. 그 부름에 대답하는 '진짜의 얼굴'은 무엇을 말함인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왔던 그 얼굴'은 누구인가.

 

"큰집의 재목은 본래가 깊은 골짜기에서 나온다. 인간이 사는 마을쪽에는 없다.

멀리 사람들을 떠남으로써 칼이나 도끼에 상하거나 찍혀 베어지지 않고 낱낱이 자라서 마침내 큰 물건으로 성장하여 뒤에 동량으로

쓰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정신을 깊은 골짜기에 깃들이게 하며 멀리 객진을 피하여 성품을 산중에서 기르며

속사를 피할지어다. 눈 앞에 사물이 없으며 마음이 스스로 편안하면 이로부터 도수의 꽃이 피고 선림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너 같은 무지렁이가 다 게송을 짓겠다고 하니 희한도 하여라."

이에 나는 엄숙한 태도로 말하였다.

"무상보리를 배우려거든 처음 들어온 사람이라도 깔보아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낮고 낮은 사람이라도 높은 지혜가 있을 수 있고,

높고 높은 사람이라도 어리석을 수 있나니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큰 죄게 됩니다."

 

임제는 선가 사상에서 가장 유명한 법문을 남기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께 도를 닦는 여러 벗이여.

그대들이 참다운 견해를 얻고자 하려면 오직 한 가지 세상의 속임수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은 바로 죽여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어떠한 경계에도 얽매이지 않고 인혹과 물혹을 꿰뚫어 자유인이 될 것이다.'

 

먼 곳에서 새벽닭 울음소리가 거푸거푸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긴 밤의 어둠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오는 모양이었다.

창호문에 새새벽의 빛이 물처럼 스며들고 있었다.

'나귀의 일이 다 가지도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 왔음이여.'

이제 나는 이 공안 하나로 '열쇠 없는 자물통'의 빗장을 여는 열쇠로 삼으려 한다.

아 자물통을 열지 않는다. 나는 이 자리에서 한발자욱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메말라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없어져도 좋다.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이 자리에서 죽어도 일어서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