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 실험

며칠 전에 콩국수를 정말 맛있게 한다는 집에 가서 콩국수를 먹었다. 삼겹살로 이미 배를 다 채우고 나서야 콩국수를 먹기 시작했는데, 고소하고 시원한 국물과 탱탱한 면발.. 거기에 감칠 맛나는 김치 한 점.. 배부른 게 전혀 문제가 안될 정도로 맛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고기도 아니고, 유별나게 비싼 것도 아니고, 특별한 요리도 아닌 것 같은... 그러니까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콩국수가 정말 맛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더 좋았다.

원래 콩국수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것 같다. 항상 여름이 되면 아빠가 밖에서 콩국수를 포장해오시곤 한다. 콩으로 만들었으니 몸에도 좋다고 하고 집에도 딱히 시원하게 먹을 것은 없기 때문에 콩국수를 먹지만, 특별히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또 콩국수를 안 좋아하는 동생의 몫까지 내가 맡아서 다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과다하게 먹고 나면 한동안은 콩국수가 전혀 끌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며칠 전 콩국수를 먹고 돌아온 날, 신나서 집에 와서 오늘 콩국수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고 처음으로 콩국수를 진짜 맛있게 먹어본 것 같다고 자랑을 했다. 그러다가 그 식당이 어디어디 있다고 가깝다고 다음에 가자고 얘기하는 데, 엄마가, 거기 ㅇㅇㅇㅇ아니야? 거기가 아빠가 매번 콩국수 사오시는 데야. 라고 하셨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충격이었다. 내 미각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에 대한 충격. 그리고 아무리 내 미각이 뛰어나지 않아도 정말 집에서 먹은 건 그렇게 맛있지 않았는데, 식당에 가서 먹은 건 어떻게 그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에 대한 충격. 어디까지가 내 미각의 문제고 어디까지가 맛의 문제인지.

내 미각이 평균수준이라고 가정을 하면, 집에서 먹은 콩국수와 식당에서 먹은 콩국수에는 맛의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 가정은 적절한 것 같다. 그러면 집에서 먹은 콩국수와 식당에서 먹은 콩국수 맛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들을 생각해보면,
- 식당보다 덜 쫀쫀한 엄마의 면발
- 콩국수와는 덜 어울리는 우리집 김치
- 집에서 동생 몫까지 먹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
- 식당에서 콩국수를 먹기 전에 먹은 삼겹살
- 아니면 내 취향의 변화?

그 다음날 그 식당 주변에서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친구는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또 먹고 싶기도 하고 다시 먹으면 정말 맛있는지 아닌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콩국수를 먹자고 할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집에서 동생 몫까지 과다하게 먹은 게 집 콩국수가 맛이 없게 느껴졌던 것의 주요한 이유였다면, 아무리 식당 콩국수라도 이틀 연속으로 콩국수를 먹게 되면 질리지 않을까. 한번 실험해보는 것도 좋지만, 어렵게 생긴 콩국수에 대한 애정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에 콩국수는 한동안 참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