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대학생활 1년을 마치고 맞이한 겨울방학의 어느 날, 이 질문이 문득 나의 머리를 스쳤다. 이런 질문을 던져 본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때 내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하고 그 이유를 일기장에 적어 보았는데, 그 이후 이 질문은 대학생활을 하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고 지금도, 특히 올해 세월호 사건이 터진 이후, 나를 쫓아다니고 있다.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도 없는 내가 이런 질문에 답 하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지만,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서 이 질문에 한 번 답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때껏 그래도 공부라는 것을 하면서 내가 느낀 점,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이유는 공부가 좋아서다. 새로 무언가를 배우고 아는 것이 뿌듯하고 재미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 나의 주변에 대해 알고 싶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대학생이 되고 이것저것 잡다한 책을 읽은 것도, 경제학 전공인데도 자연대 건물에서 물리학 수업들을 열심히 들은 것도 그냥 내가 좋고, 궁금했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호기심, 자기만족은 내가 공부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두 번째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다. 조금이라도 더 지혜로운 사람,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공부한다. 물론, 자신을 위한다는 말에는 정신적, 인격적 측면 말고도, 공부를 하면 나중에 취업을 할 때 선택의 폭이 넓어지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쉽게 할 수 있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세속적 이유도 포함된다. 생각해보면, 대학교 신입생 때까지만 해도 이 세속적 이유가 내가 공부를 하는 큰 이유였다. 고등학생 때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대학에 와서도 나중에 취직을 잘 하기 위해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지금도 이런 이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나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한다고 할 때, 내게는 이런 세속적 이유보다 앞으로 공부를 통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현명한 선택을 하고, 내적으로 풍요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세 번째 이유는 내가 사는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 나는 공부한다. 사실, 이 이유는 나에게 그리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다. 1학년 겨울방학, 내가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처음 생각할 때도 이 이유는 마지막 이유였고, 나에게는 첫 번째,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점점 이 사회에 도움도 안되면서, 심지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면서,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고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거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젊음을 다 바쳐 공부해 고시에 합격했는데 무능하고 부패한 조직에 속해 있다는 구조적 문제에 의해 또는 자신의 탐욕과 안일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이 사회를 망치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된다면, 조세 제도를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더 나은 정책을 펴는 사람이 아니라 대기업에 취직해 기업의 조세회피를 돕는 사람이 된다면, 로스쿨에서 열심히 공부해 겨우 대형 로펌에 들어갔는데 부도덕한 짓을 저지른 사람을 변호하는 사람이 된다면, 겨우 그런 사람이 되려고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면 이처럼 슬픈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세월호 사고를 통해 더 여실히 드러난 한국정부와 기득권층의 무능함과 뻔뻔함을 보면서 기왕 공부를 할거면 단순히 사회에서 잘나가는 기득권층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려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할 공부와 일이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나는 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사는 사회를, 세상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

 

이처럼 나는 공부가 좋아서, 나 자신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공부한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를 하는 이유가 뚜렷한 것 같으면서도 부끄러운 점이 참 많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우선, 내가 좋아서 자기만족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때문에 여태껏 수동적이고 편한 공부만 하지 않았나 싶다. 꼭 해야 할 공부, 중요한 공부는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쉬운 공부, 도락으로서의 공부만 했다는 말이다. 앞으로 제대로 된 공부, 어려운 공부를 할 때에도 나는 공부가 힘든 것보다 공부로 느끼는 재미와 보람이 더 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자신의 세속적 성공보다 사회를 위해 공부하고 싶다는 말은 정말 하기 어려운 말이라는 걸 잘 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대학생의 단순한 치기일수도 있고, 지키지도 못할 말을 내뱉는 위선일 수도 있다. 나는 매우 평범하고 이기적인 한 인간이기 때문에 앞으로 사회에 직접 부딪히고 내가 보살펴야 할 가정이 생기면 이랬던 나의 생각과 행동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데도 용기를 내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이렇게라도 어딘가에 글을 써 놓으면, 특히 다른 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곳에 글을 써 놓으면, 미래에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가 썼던 글을 떠올리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혹시 그 때 지금 나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택해도 적어도 부끄러움이라는 걸 느낄 줄 아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고민과 갈등을 가지고 있을 다른 학생들과도 이런 생각을 한 번 공유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 공부하는 사람이 자신이 왜 공부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중요하다. 특히,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더 진지하게 이 물음에 답할 필요가 있다. 동양에서 경제는 경세제민의 준말로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들을 구제한다는 뜻이고, 서양에서 economy집안살림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지에 대한 학문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취업에 유리하기 때문에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보다 이런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 많으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여러분들은 왜 공부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