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역지사지로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가급적 잘 하지 않는다.

부탁을 받았을 때 흔쾌히 기분좋게 해 줄 수 있는 부탁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탁도 있다.

그럴 때면 거절을 하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들어주기도 그렇고 이래저래 스트레스이다.


어떠한 부탁을 들어줘야 할 경우, 나는 시간이라는 자원을 쓰게 된다.

그렇다면 경제학을 전공한 나는 단순히 '몇 시간만 쓰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기회비용을 따져보게 된다.

가끔씩은 내가 고려하지 못한 추가적인 비용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나는 체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조금만 무리를 했다간 그 후유증이 며칠을 가 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부탁을 거절할 경우, 상대방은 나의 기회비용을 참작하여 이해해줄 수 있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상대방은 내가 조금만 들이면 되는 시간 대비 자신의 편익이 훨씬 크다고 생각할 것이고

나는 나의 시간의 기회비용이 그 사람의 편익보다 크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과 나는 그 행위에 예상되는 비용이 달라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단순히 명목적 비용만 생각하여 "그게 몇 시간 쓴다고 그걸 못해줘?"라고 생각하기 쉽다.

둘 사이에 서운함의 골이 깊게 파일 것이고, 그것은 거절을 할 경우의 추가적인 비용부담으로 내게 다가온다.

이러한 추가적인 비용부담을 고려해보아 나는 결국 부탁을 들어주는 결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한 번 양보해서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만 따져서 될 일인가 싶다.

예로부터 학연, 혈연, 지연으로 똘똘 뭉쳐진 나라에서 나 혼자 이성적으로 판단하다가는 혼자되기 쉽상이니까.

그래도 부탁의 질로 인해 사람을 가려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부탁받는 일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