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신청의 비효율

 

이번 주에 수강신청이 아닌 수강 전쟁이 또 한바탕 지나갔다. 수강신청 시각 10분 전이 되면 학생들은 PC방 컴퓨터 앞에 앉아 수강신청 사이트를 켜 놓고 마우스를 장전한다. 서버시간을 노려보다 수강신청 시간 정각이 하고 되는 순간 너도나도 장전해 놓았던 마우스로 광클을 하기 시작한다. 마치 단 일 초 만에 승부가 결정되었던 옛날 서양 귀족 신사들의 권총 결투에서처럼 수강 전쟁에서도 단 몇 초 만에 수강신청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0.1초라도 먼저 클릭하면 성공하고, 0.1초가 늦었는데도 튕기거나 실패하는 게 수강 신청이다.

 

학년마다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학생들이 동시에 수강신청 사이트에 접속해 과목을 클릭한 순서대로 수강신청 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 몇 분도 안 되어 수강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뜻 보면 참 쉽고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묘사했듯이 약간의 운과 컴퓨터의 성능, 빠른 손놀림에 의해 순식간에 학생들의 중요한 수강신청이 결정되는 것은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다. 특히 경제학적으로 접근할 때 이 수강신청 방식은 파레토 개선의 여지가 많고 상당한 deadweight loss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 배우는 파레토 효율이란 다른 사람의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의 상황을 더 좋게 만들 수 없을 때, 즉 두 사람의 상황을 모두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거래의 기회가 없을 때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어떤 거래나 행동을 통해 두 사람의 상황이 모두 나아질 수 있으면 파레토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말하고, 이 때 사람들의 상황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다 실현하지 못했으므로 이 상태는 파레토 비효율적이다.  더 이상 한 사람의 상황을 더 나쁘게 하지 않고서는 다른 한 사람의 상황을 좋게 할 수 없을 때, 두 사람의 상황 모두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거래가 모두 실현되었을 때, 우리는 파레토 효율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우리 학교 수강신청 결과가 파레토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방학 때 수강신청 기간 이후 타임테이블이나 이화이언에서 많은 추가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서로 자신이 수강 신청한 과목들을 교환하거나 수강신청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과목을 양도하고 사례를 받음으로써 거래를 한 두 사람 모두 이익을 본다. 파레토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파레토 개선은 이렇게 개인들 간의 거래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수님이 수강제한 인원을 더 늘려 주실 때 파레토 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교실 크기만 충분하다면 소규모 인원이 적합한 수업을 제외하고는 수강인원을 늘림으로써 교수님이 손해 보는 일은 거의 없고 학생들의 처지는 개선되니 다른 사람의 상황을 더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어떤 사람의 상황을 낫게 할 수 있는 파레토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적인 거래나 교수님의 행동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의 상황이 나아질 수 있는데 수강신청만으로 그러지 못 했다는 것은 기존 수강신청의 결과가 파레토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파레토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수강신청을 할 때 여러 무의미한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도 수강신청시스템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강신청을 할 때 내가 쓰는 시간, 정신적 스트레스와 같은 비용들에 대한 편익으로 내가 원하는 수업을 신청했다는 기쁨을 생각할 수 있지만, 학생으로서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권리와 수업의 가격이 이미 등록금에 다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내가 들인 모든 비용은 누구에게도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deadweight loss. 이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공연관람 티켓을 줄을 선 순서대로 공짜로 나누어 주었을 때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 시간을 deadweight loss로 보는 것과 같다. 만약 이 티켓을 시장을 통해서 분배했다면 학생들이 쓴 돈, 즉 비용은, 그 티켓을 판 사람에게 이익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학생들이 그냥 줄을 서서 티켓을 얻었을 경우, 학생들이 들인 비용인 줄 서서 기다린 시간은 아무에게도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으므로 deadweight loss가 된다. 경제학과 우선수강신청과 3학년 수강신청, 전체학년 수강신청을 모두 해야 했던 나는 이번에 PC방을 무려 세 번이나 가야 했으므로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했고, 이 시간은 아무에게도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했으므로 고스란히 deadweight loss가 되었다. 게다가 이렇게 큰 비용을 들였는데도 내가 원하는 수강신청을 다 하지 못했으므로, 즉 이익을 하나도 얻지 못 했으므로, 더더욱 큰 비효율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비효율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의 와튼 스쿨은 수강신청에 경매 방식을 도입했다고 한다. 모든 학생들에게 가상으로 5000포인트씩 나누어주고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 포인트를 걸어 가장 많이 건 사람 순서대로 수강 정원을 채우는 방식이다. 이 방식대로 하면 각 수업마다 가장 듣고 싶어하는 학생 순서대로 수강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수강신청을 한 뒤 추가적으로 거래를 해야 하는 비효율이 사라지고, 수강신청 하기 전에 미리 포인트를 모두 걸어 놓기 때문에 수강신청을 할 때마다 긴장된 마음으로 PC방에 가야 하는 비용도 없어진다. 이 방식을 그대로 우리 학교에 도입하면 수강신청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하고 모든 학생들이 새로운 방식을 익혀야 하는 등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그래도 현재 수강신청 시스템의 비효율을 고려한다면 이렇게 시장의 원리를 도입해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은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

 

수강신청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인기 강의나 좋은 강의의 수강인원에 비해 그 강의를 듣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수가 더 많다는 점이다. ,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 따라서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좋은 강의의 수나 수강인원을 늘리거나 학생들의 수요를 줄여야 한다. 이 때, 좋은 교수를 더 많이 초빙하고 인기 강의를 더 많이 여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공급이 고정된 상황에서 와튼 스쿨처럼 가장 willingness to pay가 높은 사람에게 수강신청의 우선권을 주는 경매 방식은 나름 합리적인 차선으로 보인다.

 

또한,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강의에 대해 정확하고 충분한 양의 정보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수강신청의 비효율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인기 강의에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것은 그 강의가 정말로 좋은 수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강의에 대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 강의마다 여러 가지 사항 별로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타임테이블과 같은 비공식적인 강의 평가 사이트는 각 강의마다 같은 비중으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평이 더 좋거나 조금이라도 더 많은 평이 달린 강의에 학생들이 몰리곤 한다. 수업 난이도나 학점, 교수님의 강의력, 수업 스타일 등 여러 가지 기준에 대해 체계적인 정보를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다양한 선호를 가진 학생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게 더 다양한 강의를 선택할 것이고, 수강신청을 할 때에도 수요가 좀 더 효율적으로 분산될 수 있다.

 

PC방을 세 번이나 갔는데도 수강신청에 실패한 나는 이제 개강 후 수강신청 변경기간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이번 학기처럼 꼭 듣고 싶은 과목이 있는 경우, 수강신청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큰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들을 수만 있다면 그래도 좋으련만. 내가 내 돈 내고 강의 듣겠다는데 내가 원하는 수업을 못 들을 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참 웃기고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