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오즈의 마법사'를 색다른 시각에서 각색한 뮤지컬이다. 기존의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도로시가 주인공으로, 글린다가 북쪽의 착한 마녀, 엘파바가 서쪽의 나쁜 마녀로 등장한다. '위키드'에서는 이 글린다와 엘파바가 새로운 주인공이다.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마녀들 사이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글린다는 착한 마녀, 엘파바는 나쁜 마녀가 된 것인지 위키드를 보고 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럼 알고보니 엘파바는 착한 마녀이고 글린다는 나쁜 마녀였구나!' 라고 단정지어버리면 안된다. 사실 내가 뮤지컬 초반에 그렇게 생각할 뻔 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선과 악이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 주인공들의 행동들을 볼 수 있다. 초반에 엘파바를 왕따시켰지만 결국 엘파바와 친해져 그녀를 걱정하는 글린다의 모습, 정의감과 책임감이 넘치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하는 측면이 있고 도로시를 가두고 박해하기도 하는 엘파바... 절대선인과 절대악인을 구분짓는 일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하지만 오히려 역으로 절대악인을 등장시킴으로써 선과 악을 구분지으려하는 인간들의 속성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그 '절대악인'은 바로 '동물들'이다. 원작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이 뮤지컬에서도 오즈의 마법사는 사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인물이지만 에메랄드 시 사람들을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속이며 통치하고 있다. 그는 에메랄드 시의 동물들을 악의 근원으로 설정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하여 사람들이 동물들을 증오하게 만든다. 오즈의 마법사는 엘파바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통치하기가 쉽기 때문이라고 말해주며 덧붙인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란다.' 실망한 엘파바는 마법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곳을 떠나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엘파바는 곧 '절대악인' 중 하나로 선포되어 수배령이 내려진다. 한 인물이 순식간에 나쁜 놈이 되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 얼만큼이 진실인걸까. 

 

알고보면 엘파바가 꼭 나쁜 마녀가 아닐 수도 있고, 오즈의 마법사가 위대하고 정의로운 마법사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오즈의 마법사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쉽게 생각해버리는 사람들을 속여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데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피에로는 글린다를 떠나 초록 피부를 가진 괴팍한 성격의 엘파바를 택한다. 이 정도쯤이면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라는 말이 위키드의 중심 문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문장을 경제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해석해본다면 어떤 시사점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아마도 효율과 형평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효율과 형평 두 가지를 동시에 완벽하게 이룰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경제학자들이 주로 효율을 최대화시키는데 관심을 너무 쏟은 나머지 형평의 문제를 등한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효율이 상대적으로 형평보다 측정이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 물론 형평의 개념 자체가 수직적 형평, 수평적 형평으로 나누어지기도 하고 개인의 가치판단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서 기준으로 삼기엔 좀 애매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효율과 형평이 모두 고려될 때 두 가치가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내며 더 큰 효용을 줄 수 있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이나 같은 지위의 사람들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외침, 가장 가난한 자의 효용을 최대화시키는 롤즈적 정의 모두 형평에 대한 고려를 요구한다.


혹자는 최대효율, 수직적 형평, 수평적 형평이 완벽하게 충족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의 포인트는, 한 가지를 완벽하게 충족시키기위해 나머지 두 가지를 아예 포기하기보다는 세 가치들끼리 서로 적당히 양보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사회발전의 양상이 아닐까 라는 것이다. 효율, 수직적 형평, 수평적 형평 중 무언가를 포기하라기엔,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세 가지 모두 중요하다. 가끔 경제학과가 사회과학대학에 속해있다는 것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아마 경제학과가 상경계열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 것 같은데 효율과 형평, 나아가 크게는 '정의'를 다룬다는 면에서 경제학은 당연히 사회과학이다. 이것을 쏙빼고 생각한다면 과연 진정한 의미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을지, 감히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