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오래된 궁금증이 있다. 나는 여대에 다녀서 그런지 아는 남자 친구들이나 선배들로부터 괜찮은 여성을 소개시켜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게 되는데, 그들이 원하는 여성의 조건들 중 하나가 맘에 걸린다. 얼마전에도 친한 친구에게서 소개팅을 해주면 안되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그가 원하는 여성은 '예쁘장하고, 착하고, 된장녀같지 않은 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이런 조건은 거의 늘 동일했다(이것이 아니라면 오로지 예쁜 여성이면 괜찮다고 하는 경우).


소개팅을 해줘 본 사람들은 다들 알 것이다. 원하는 이성상을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면 주선자 입장으로서 그에 부합하는 짝을 찾아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예쁘장하고 착한 여성'이라는 것도 주관적인 잣대이니 어려운 조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예상은 가능한 조건이다. 근데 된장녀같지 않은 여성?? 된장녀 같다는 것도 대충 무슨말인지는 감은 오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된장녀같지 않은 여성인지 아닌지 살펴야 하는건지. 이 말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거니와 또 안다고 하더라도 왜 많은 남성들이 그런 여성을 원하는 여성의 조건에 꼭 넣는 것인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엔 친한 친구의 부탁이기에 된장녀같지 않은 게 뭐냐고 한번 되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그의 답.

"아 왜 그 있잖아 머리는 비어가지고 자기 치장만 하고 다니는 애. 요즘 이대에도 된장녀들 많다며".

궁금증은 이에서 비롯되었다. 하. 내가 어떤 사람이 머리가 비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자기 치장만 하고 다니는 사람인지 남도 치장해주는 사람인지, 학교는 화려하게 차려입고 다니고 집에서는 머리 질끈 묶고 공부를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왜 이 남자들은 그런 여성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예쁜 여성과 치장하는 여성은 판단하기 나름 아닌가? 사람들이 누군가를 된장녀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부를만한 자격/조건이 되어야 그녀를 그와같이 칭할 수 있을텐데, 그렇다면 된장녀란 구체적으로 어떤 여성을 뜻하는 걸까? 내 곁에 그녀가 있을까? 혹시 나는 아닐까? 아님 혹시 당신?

 

 

[수상한 된장녀1. 된장녀를 찾아라]

 

생각해보니 된장녀를 어림짐작할 수 있는 이미지는 머릿속에 있었다. 대충 그려보았을 때, 능력도 없으면서 명품가방과 커피전문점 아메리카노를 들고다니는 여성의 이미지 아닌가. 그럼 이게 된장녀의 정의인가? 명품가방과 아메리카노를 들고다니는 능력없는 여성=된장녀? 에이 설마. 생각해보니 '된장녀, 된장녀' 주변에서 많이들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것에 대한 대충의 이미지는 머리 속에 있었지만 제대로 그것이 어떤 여성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끝내 된장녀의 정의가 무엇인지 사전을 찾아보기로 했다(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고지식하다 하기도 하더라). 그렇게 찾아본 된장녀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된장녀란 "웬만한 한끼 밥값에 해당하는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마시며 해외 명품 소비를 선호하지만 정작 자신은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기에 부모나 상대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소비 활동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젊은 여성을 비하하여 일컫는 말이다. ... (중 략) ... 된장녀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던 2005년에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해외 명품을 선호하는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국한되어 있었지만, 곧 여성은 남성들에게 보호받고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당연하다는 듯이 내세우는 여성들을 비하적으로 통칭하는 의미로 확대 사용되었다. ... (중 략) ... 논란 이후에도 된장녀의 의미는 계속 확대 재생산되어 최근에는 남성들이 생각하는 모든 부정적인 여성상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김기란, 최기호(2009), 대중문화사전)"

(대중문화사전이 믿을만한 사전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된장녀라는 용어는 국립국어원의 표준대국어사전(http://stdweb2.korean.go.kr/main.jsp)에는 기재조차되지 않은 단어여서 할 수 없이 그나마 이 용어의 정의를 소개한 위 사전을 참고하게 되었다.)

 

세상에 사전에서 된장녀를 이렇게 정의하다니(설마가 사람잡네).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마시며 해외 명품 소비를 선호하면 그냥 스타벅스명품선호녀라고 하던지. 이건 그냥 대충 이미지를 던져주고 알아서 편한대로 용어를 사용해도 된다는 거잖아?

나에게는 이러한 정의가 무척이나 무책임하고 모호한 것으로 느껴졌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정의의 문제점은 '비싼 명품'의 기준조차 설정해 놓지 않은 채  4,000~6,000원을 주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여성과 100만원은 훌쩍 넘어서는 가방을 구매하는 여성을 모두 된장녀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용어의 쓰임이 어떤 여성의 구체적인 소비생활이나 소비의 원천을 샅샅이 파악하지 않은 채 그녀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여 불리워지고 있는 현실까지 고려했을 때, 이렇게 용어의 정의가 갈수록 변하는 것은  타인에 의존해서 소비하는 여성과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소비하는 여성 또한 모두 된장녀라는 이름으로 불리도록 한다는 문제까지 낳는다. 그러니까 된장녀라는 용어는 그동안 굉장히 불분명하고 모호한 정의 아래에 사용되어져 왔던 것이고, 우리에게는 누군가를 된장녀라 칭할만한 어떤 근거도 없었던 것이다(아니, 이렇게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에 그동안 모든 꼬투리(?)가 다 된장녀를 만들어 낼 근거가 될 수 있었겠지).

 

 

[수상한 된장녀2. 그녀가 비난과 회피의 타겟이 되는 진짜 이유는?]

 

이 시점에서 나의 의문은 다른 방향으로 번진다. 된장녀가 제대로 정의되었고 그렇지 않았고를 떠나서 그래, 우리들 마음속에 각자 생각하는 된장녀가 딱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된장녀는 비난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인가? 왜 사람들은 된장녀를 싫어하는가? 된장녀를 욕하는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된장과는 아예 거리가 먼 사람인가?

예를들어, 남들 6천원짜리 점심 사먹을 돈으로 700원짜리 삼각김밥 하나 먹고 5천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여성이 남들보다 된장녀인 것인가? 꼭 100만원짜리 가방이 아니더라도 3,40만원짜리 가방을 메는 여성은 진짜 된장녀보다 덜한 된장녀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만일 비싼 가방을 소비할 때 가장 행복하여 명품가방을 사기 위해 몇 년동안 푼돈을 모아온 여성이어도 된장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저가의 가방을 사야 하는 것일까? 또한 어찌하여 7,8천만원 하는 자동차를 신형이 나올 때마다 수집하는 남성들은 마녀사냥 되지 않는가? 왜 그들은 비난을 받더라도 그들 개인의 문제로 여겨지고 여성의 소비는 상대적으로 집단화되어 손가락질 받는 것일까(예컨대 이대생=된장녀라고 보는 시선)? 스스로 명품을 살만한 능력이 돼서 많은 지출이 있는 여성이 비판을 받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어쩌면 된장녀라는 이름으로 특정 집단의 소비를 비난하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지 못하고, 베풀지 못하고 온통 자신에게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져 있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일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들의 과소비가 단순히 사치스럽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지, 사치스러운 '여성'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된장녀 논란은 단순히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는 듯하다.

사실 남성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명품에 열광하곤 하기 때문이다. 남성 역시 고급 브랜드의 시계나 차를 소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취향을 과시하고자 하며 그의 뜻대로 사람들은 그가 소비하는 물건의 가치에 비례하여 그의 (소비)능력을 평가한다.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여기서는 명품을 좋아하는 여성과 명품을 좋아하는 남성의 경우를 비교하여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의 소비를 아버지, 연인, 남편으로 대표되는 남성의 능력에 완벽히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낸다. 우리는 TV 드라마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하여 능력이 좋고 돈이 많은 남자와 부정한 관계를 맺는 여성 캐릭터들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반면 남성이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이로써 '사치스러운 여성'은 그 자체에 대한 비난에 더하여 '남자에 기생할 궁리만 하는 여성'이라는 비난까지 받게 되는 것이다.

 

나는 끝내 이것이 남성의 명품은 그의 능력을, 여성의 명품은 그녀의 허영과 사치를 의미하는 우리 사회에서의 이중적 잣대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데 이르렀다. 여성의 소비에 대해 이런 시각이 계속되는 원인은, 기본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하여 사회에 진출하기 어렵거나 스스로 취집을 선택하고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남성에 비해 일 대비 수익이 적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여자가 자기 돈 자기 맘대로 쓰겠다는데 왜 욕하는거야?'가 아니라 당연히 여성의 돈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고, 그래서 명품 옷을 입고 명품 백을 메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여성이 있으면 그 여성이 어떤 능력을 가진 어떤 여성인지도 모른 채 겉모습만 보고 즉시 '저 물건 다 어디서 났대? 어휴 남편 등골 빼먹는 X이네'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남녀가 평등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남성들도 아직까지 여성에게 남성만큼의 소득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에게 어느정도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은 다른 방면으로 또 살펴볼 문제일 것 같다(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가 여성들을 (남성에 비하여) 취직이 아닌 취집으로 몰고가는 사회 분위기랑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아직 정리되지 않아 섣불리 얘기하지 못하겠다)

 

이러한 고민끝에 내가 찾은 궁금증에 대한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내 주변 남성들이 소위 '된장녀'를 꺼리는 이유는 그 여성이 생각보다 비싼 물건을 소비한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녀의 된장 기질(?)이 결국 자신의 지갑을 열게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 아니면 설마. 능력 있는 여성이 비싼 물건을 소비하는 것을 질투하여,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만나는 여성이 자신보다 더 능력이 좋아 자신보다 예산범위가 더 넓다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할 것 같아서 애초에 그런 싹을 잘라버린 것은 아니겠지. 또한 설마, 그런 사고방식 아래에서 여성의 소비 원천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확인해보지도 않고 그녀의 소비를 특정 시선으로 판단하여 (된장이라는 이름으로) 평가 절하하거나 아니면 그게 다 남자 덕이라는 식으로 당연시 해버리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내 경험상 설마는 사람잡는다).


친구가 원하는 여성을 어떻게 찾아주나- 하는 마음에 시작한 고민인데. 어떤 논리도 없이 다짜고짜 나에게 된장녀가 아닌 여성을 찾아달라고 한 그가 괘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중 생각해보니 이 친구가 이대생을 만나보고 싶긴 한데 이대생이 된장녀라는 소문 때문에 나한테 특별히 '된장녀같지 않은 여성'을 소개해달라는 조건을 붙인 것 같다(다른 대학에 다니는 여자 친구들에게 '보통 남자애들이 소개팅 해주라고 할 때 어떤 여성을 원하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들의 답은 내가 겪은 것과 달랐다). 이 또한 괘씸하지 않을 수 없다.

소개팅 해주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