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도, 세계 경제도 총수요 부족이 문제다. 총수요가 부족하면 고용이 줄고, 임금과 소득이 줄고, 소비와 투자가 줄어 수요가 더 감소하는 경기침체의 악순환이 벌어진다. 경제학자들이 고민하는 건 오늘날의 세계적 총수요 부족이 글로벌 불균형과 빈부격차의 심화, 산업발달에 의한 실업 증가, 세계 여러 나라의 부채 증가 등 구조적 문제에 의한 것이라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여러 정책결정자들이 총수요 늘릴 방안을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을 때, 평소 별 할일 없고 이런저런 공상을 즐기는 나는 경제학도답게 여러 가정을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총수요 부족이 큰 문제이긴 한데, 만약 정말로 총수요 부족 문제가 해결된다면, 글로벌 불균형과 세계 빈부격차가 해소되고, 산업구조 변화에 의한 실업이 줄고, 많은 국가들이 정부부채를 다 갚아 전세계적으로 총수요가 증가하고 세계 경기가 유례 없는 호황을 맞으면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까?  

 

총수요 부족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면 총수요 부족이라는 큰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평소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생각했을 때, 우리가 바라는 대로 아프리카에 있는 많은 가난한 나라들이 선진국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잘 사는 나라가 되고,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중산층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갖고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으면 이 세상은 더 행복한 세상이 될까?

 

나의 대답은 No이다. 그 때는 총수요 부족이 아닌 총공급 부족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되어, 특히 지금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중산층이 되어 자동차를 한 대씩만 소유한다고 해도 엄청난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이 초래될 것이다. 어디 자동차뿐인가? TV나 컴퓨터,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제품에 대한 수요 증가와 물과 전기, 식량과 같은 생필품에 대한 수요 증가는 이 지구를 매우 짧은 기간에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아직 빈부격차나 가난이 심각한 오늘날에도 앞으로 지금의 소비 수준이 유지될 경우 얼마 안 있어 자원이 부족해 자원 전쟁이 일어나거나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로 인해 인류에게 큰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고 경고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앞으로 총수요 부족 문제가 해결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소비를 한다면 이는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 내가 하는 상상은 정말 터무니 없고, 비관적인 쓸데없는 상상일지도 모른다. 우선, 구조적인 총수요 부족 문제가 그렇게 빨리, 완벽히 해결될 리가 없다. 글로벌 불균형과 빈부격차가 그렇게 쉽게 해소될 리가 없으며, 산업구조 변화에 의한 일자리 문제와 각국의 정부부채 문제도 간단히 해결될 리가 없다. 설령,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총수요가 증가해도 그 때쯤이면 어떤 신기술이 개발되어 더 나은 대체자원을 이용할 수 있고, 환경 오염을 줄이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상상을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수요하지 않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씁쓸함과 안타까움 때문이다.

 

과거에 인간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지만 그만큼 많은 자원을 소모하지도 않았다. 작은 비용 대비 작은 이익을 누린 것이다.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어떠한가? 정말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지만 그만큼 포기하는 것도 많다. 엄청난 양의 자원을 포기하고, 환경 오염이라는 비용을 발생시킨다. 노동을 절감시키고 대량생산을 가능케 하는 기계 사용을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기계를 만드는 데 드는 자원과 인력, 실업 증가 등 물질적, 사회적 비용을 모두 고려하면 비용 대비 이익이 그렇게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겨우 몇 초 더 빠르고 조금 더 세련된 스마트폰을 개발하기 위해 삼성과 애플이 들이는 막대한 기술 개발 비용 등을 고려하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과거보다 정말 효율적인 사회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효율성 측면뿐만 아니라 삶의 질이나 행복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가 과거에 살던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 소득이 일정 수준만 넘으면 소득의 크기와 행복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이제는 꽤 뻔한 사실이다. 1950년대와 비교하여 현재 미국의 1인당 GDP 3배가 증가했지만 미국인의 행복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현대 사람들은 더 많은 소득과 소비에 집착하고, 실제 사회도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비를 해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현실이 되었으며(한국의 경우, 누구나 차 한 대, 컴퓨터, 스마트폰은 가지고 있어야 하고, 대학을 나와야 하며, 자녀 교육을 시켜야 하고, 노후 대비를 해야 하는 사회이다), 나아가 많이 소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아껴 쓰고 절약하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구조의 큰 틀에 대한 생각 없이 당장 눈 앞에 있는 불 끄기 식으로 마냥 총수요 증가만을 외치고 경제성장(=GDP증가, GDP야 말로 고갈된 자원, 오염된 환경, 심화된 빈부격차와 같은 비용(cost)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생산된 것, 물질적 이익(benefit)만 고려하는, 항상 비용과 편익을 엄밀히 비교해야 하는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가장 어리석은 지표가 아닐까 싶다)만을 추구하는 정책들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총수요 부족은 큰 문제다. 하지만 총수요 부족이 문제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더 크고 무서운 문제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과 걱정이 나를 더 오싹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