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은 대학가인만큼 헌책방들도 많다. 신촌역 1번 출구로 나와 쭉 걷다 보면 대로변에 20년 역사를 지닌 공씨책방’, 3분 정도 더 걸으면 글벗서점’, 그 근처의 장로교회를 낀 골목으로 들어가 연세대 방향 쪽으로 가면 신촌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정은서점’, 다시 공씨책방 맞은 편 카페베네 건물 앞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다른 헌책방들에 비해 책 정리가 꽤 잘 되어있는 숨어 있는 책이라는 헌책방을 찾을 수 있다. 신촌역 바로 앞에 깔끔하고 현대화된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긴 이후 헌책방을 찾는 나의 발걸음은 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걷기와 책을 좋아하는 나는 요즘도 여전히 시간이 날 때나 그냥 혼자 걷고 싶을 때 헌책방 나들이를 하곤 한다.

 

내가 처음 이런 헌책방들을 알게 된 것은 재수학원에서 인연을 맺게 된 한 선생님께서 직접 시켜 주신 헌책방 투어 덕분이다.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으시고 평소 헌책방을 자주 다니신다는 이 선생님은 수능이 끝난 후 원하는 학생들을 몇 명 데리고 신촌 헌책방 구경을 시켜주셨다. 헌책방 안 전체를 주욱 둘러보면 손때 묻은 책들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히 쌓여 있는 모습에 눈이 절로 휘둥그레해 지면서도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다. 한편, 책장 하나를 골라 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많은 책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제목만 읽는데도 눈이 피곤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책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이 날 헌책방을 네 군데나 들렸는데도 결국 읽고 싶은 책을 한 권도 고르지 못하고 빈 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대학에 입학하기 한 달 전, 나의 첫 헌책방 나들이였다.

 

그 이후로도, 가끔 선생님을 찾아 뵈면 신촌뿐만 아니라 서울대나 외대 근처에서도 같이 헌책방 나들이를 하곤 했는데 이렇게 몇 번 헌책방을 다니다 보니 이제는 나 혼자서도 가끔 헌책방을 찾을 만큼 헌책방 다니는 것에 익숙해졌다. 선생님께서 책에 대해 워낙 많이 아는 분이셔서 같이 헌책방을 갈 때마다 책이나 작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시곤 했는데, 이렇게 주워 들은 이야기와 책을 직접 골라보고 읽은 경험 덕분인지 이제는 어지러운 책들 틈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눈에 쏙 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헌책방에 다니다 보니 책과도 좀 더 친해졌다. 학생이라 매번 제 값 내고 책 사기도 부담스러운데 멀쩡한 책이 원래 가격의 3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발견하면 괜시리 뿌듯해진다. (운이 좋으면 JJ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Jeffrey D. SachsThe Price of Civilization이나 The End of Poverty 같은 원서들도 찾을 수 있다!)

 

요즘은 알라딘 중고서점이 서울 곳곳에 생겨 헌책 구경하기가 더 쉬워졌다. 알라딘 중고서점은 그냥 서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서점 내부가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책들은 모두 새 것처럼 깨끗하고, 저자별, 분야별로 매우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있다. 컴퓨터로 보유도서를 검색하고 책의 위치를 바로 찾아 볼 수도 있다. 헌책방 들릴 시간이 없고, 찾고 싶은 특정한 책이 있을 때에는 나도 알라딘 중고서점을 찾곤 한다. 바쁘고 효율적인 것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중고서점이 안성맞춤인지라 알라딘 중고서점은 갈 때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나는 맨 처음 간 헌책방이 오래된 옛날 헌책방이어서 그런지 가끔은 이런 현대화된 중고서점보다 옛날 헌책방을 찾게 된다. 더 정감이 가는 아날로그적 분위기도 좋고, 사람들로 너무 붐비지 않고 조용해 더 찬찬히 책을 살펴 볼 수도 있다. 또한 오래된 헌책방일수록 다양하고 좋은 책들이 많다. 알라딘 중고서점의 젊은 점원들은 단순히 책의 상태를 보고 등급을 매겨 너무 오래되지 않고 깨끗한 책들만 들여놓는 반면, 오래된 책방의 주인들은 보통 책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 많아 조금 낡고 낙서가 있어도 유명하거나 좋은 책들을 구매해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해 놓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은 좀 퀴퀴하긴 해도 귀한 책을 찾았다는 기쁨과 책 전 주인의 이런저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쏠쏠한 재미를 가져다 준다.

 

낮은 아직 덥지만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하다. 여름에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도 어느새 많이 짧아졌다. 가을이 오고 있나 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중고서점이든 오래된 헌책방이든 헌책방 나들이를 하며 책과 가까워지는 건 어떨까.

 

p.s. 앞에 적은 신촌의 헌책방 네 군데 말고도 낙성대역 4번 출구 앞에 있는 흙서점, 외대 근처의 신고서점도 좋은 헌책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