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 쯤은 소개팅을 해봤을 것이다. 내 친구 중에 일주일에 한번 씩 꼬박꼬박 소개팅을 나가는 친구가 있다. 가끔은 하루에 두탕씩 뛴다. 항상 주변에 남자들이 꼬이지만 눈이 높은 이 친구는 여전히 소개팅을 전전하며 짝을 찾고 있다. 나도 소개팅을 처음 나갔을 때 이 친구한테 조언을 구했다. 그랬더니 우선 옷차림의 경우 첫 번째 만남에서는 다른말 필요없고 그냥 무조건 여성스럽게, 두 번째 만남에서는 조금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등등 인터넷이나 잡지, 연애지침서 등에서 보이는 그 뻔한 말들을 해줬다. 그리고 절대절대절대로 나의 취향을 드러내지 말라고 충고했다. 왜냐. 나는 음.. 폭넓은 문화생활을 사랑해서 이말년 같은 저질뵨태만화도 죠아하고 영화볼 때는 나름 시니컬해서 피 철철 뿜고 시체들이 나오는 타란티노나 박찬욱영화도 죠아하고 음악은 클래식, 재즈, 가요 등 다 죠아하지만 요즘은 일렉에 빠져있기 때문에.. 남자들이 이러한 나의 취향을 알면 무조건 싫어한다는 거다. 처음엔 친구말을 듣지 않았다. 어차피 숨겨봤자 나중에 들통날텐데 그냥 처음부터 나의 취향을 사랑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첫 번째 만남의 취향얘기 파트에서 매번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매번 활짝 웃고 있던 상대방의 표정이 급굳는 모습을 연달아 목격하고선.. 아 진짜 이런건 우선 숨겼다가 나중에 터트려야겠네.. 하고 뒤늦게 깨달게되었다. 생각해보면 조금 웃기긴하다.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다소곳이 앉아서 조곤조곤한 말투로 전 타란티노 영화를 좋아해요~ 그 감독은 사지가 절단되는 장면도 참 아름답게 만드는것 같아요^^ 와 같은 멘트 날린다고 생각하니 ㅋㅋㅋㅋㅋ

 

처음엔 서툴러도 여러번 경험이 쌓이면서 남자 만나는 노하우도 늘고 유명한 연애지침서들을 줄쳐가며 정독하면서 밀당하는 법도 배웠다. 그런데 여전히 난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되면 나의 본모습을 숨기지 못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처음엔 무조건 '남자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에 맞게 나를 꾸미고 나중에 그 남자가 나에게 빠져든거 같으면 조금 씩 나의 본모습을 꺼내는 것이 맞는데. 이상하게 그게 잘 안된다. 연애지침서들은 참 재미있다.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특성을 바탕으로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이것이 정답'이라며 따라하라고 권유 (또는 강요)한다. 지침서에 의하면 여자들은 항상 차갑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하며 문자는 약 십분뒤에 답하고, 첫 번째 전화는 받지 말고, 우리 오늘 저녁 먹어요라고 하면 오늘 완전 한가해도 무조건 바쁜일이 있다며 거절을 해야한다. 절대로 먼저 손을 잡아서도 안되고 사랑한다고 말해서도 안된다. 즉, 모든 여자들은 똑같은 패턴으로 똑같은 멘트를 날리며 연애를 해야한다. 똑같지는 않더라고 비슷하게.

 

나는 이러한 연애조언들이 나름은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과 주변 경험들을 봐도 옷을 락시크하게 입었을 때와 쉬폰원피스를 입었을 때 주변 남자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예쁜 찻잔 수집하는게 취미인 여자와 야매요리를 따라하며 소금을 소금소금 넣을 것 같은 여자가 받는 시선도 다르다.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지침서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먹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성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전화가 오면 받고, 시간이 되면 같이 저녁을 먹고, 좋으면 적극적으로 표현을 한다. 쓰고 싶으면 야매토끼의 겁나좋군 이모티콘을 날리고 나는 7번방의 선물을 보고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그런데 뒤돌아 생각해보면 나를 좋아해주었던 남자들은 모두 나의 진실된 모습을 좋아해줬었지 논리적으로 짜맞춰진 가짜의 모습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였다 (물론 어느정도의 내숭과 튕김이 필요했지만ㅋ).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가득가득한데 어떻게 모든 남자들이 '이러한 여자'를 좋아하고 그래서 모든 여자들이 '이렇게' 행동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너도나도 '이러한 여자'가 된다면 연애 5번한 남자는 여섯번 째 여자와도 똑같은 취향의 똑같은 패턴으로 연애하고 싶을까. 그래서 나는 이제 연애지침서를 보지 않는다. 어차피 이론으로는 우리 모두 알고 있고 그것이 항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나의 감성에 의하면 그 이론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